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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공군의 F-14 이야기입니다.

Eijrhnh 2020. 12. 22. 10:44

이란 공군의 F-14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란이 없었다면 F-14 는 존재하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란 공군의 F-14A 전투기

 


1950년대부터 미 공군과 미 해군은 새로운 전투기 개발을 시작합니다.

바로 미 공군의 TFX (Tactical Fighter Experimental) 계획과 미 해군의 FADF (Fleet Air Defence Fighter) 계획입니다.

미 공군의 TFX 는 폭장을 한 상태에서 저공을 초고속으로 침투할 수 있는 "전투 폭격기"를 만든다는 계획으로 제너럴 다이나믹스가 사업을 수주해 기체 개발을 진행했고, 미 해군 FADF 는 대함 미사일을 탑재한 적의 대형기를 대함 미사일의 사정거리 밖에서 교전해 격추 시킬 수 있는 장거리 공대공 교전 능력에 더해 근접 격투전 (Dog Fight) 능력까지도 모두 갖춘 "함대 방공 전투기"를 목표로 더글라스사에서 개발을 진행하게 됩니다.

둘은 개발 목표만 보아도 공통점이 없습니다만, 1961년 미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맥나마라는 "시스템 분석 기법"을 국방부에 도입해 "비용대 효율"을 따지시는 분이셨던고로, 미 공군과 미 해군에 두 사업을 통합해 제너럴 다이나믹스사가 미 공군을 위해 개발하고 있던 "F-111" 을 함께 구입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항공모함에 착함 중인 F-111B

 


그래서 제너럴 다이나믹스가 그러먼 사의 도움을 받아 F-111 을 개조해 항공모함 탑재 전투기로 (TFX-N) 내놓은게 F-111B 였습니다.

1965년부터 F-111B 의 평가를 시작한 미 해군은 이 비대한 공군 출신 전투기는 항공모함에서 도저히 못 써먹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1967년 다시 함대 방공 전투기 개발 사업을 진행해 그러먼 사가 수주해 개발하게 된 것이 F-14 입니다.

※ F-14A 의 화기관제 시스템,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엔진은 모두 F-111B 의 것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선행 양산기인 F-14 로 이중 1기는 자기가 발사한 공대공 미사일 (AIM-7)에 피격추 당하는 불행한 사고를 겪게 됩니다

 


F-14 는 1969년 3월 미 해군에 채택되어 프로토 타입을 건너뛰고 F-14 12기의 선행 양산기 (F-14A 블록 1-55) 운용 평가를 시작으로, 불과 22개월만에 IOC (초기 작전 능력)을 획득해 1973년부터 본격적인 양산 형식인 F-14A 가 양산에 들어가게 됩니다.
※ 미 공군이 F-15 를 도입한 방법과 같은 수법인데, 정치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 이었습니디.


하지만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던 1973년, 지구촌은 처음 경험해 보는 오일 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상승해 고통 받고 있었고, 마침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를 시작하던 해이기도 해서 이 두가지가 그러먼사에 악재로 작용하게 됩니다.

물가가 상승해 미 해군에 납품하는 단가보다 제조 원가가 더 들게 된 그러먼사는 미 해군에 납입 단가 인상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국 야당에서는 터무니 없이 비싼 F-14 를 비판하며 물고 늘어져 해군의 도입 기수를 절반 이하로 토막내 버립니다.

덤으로 미 해군의 전투기를 같이 발주해 운용하는 미 해병대 항공대에서는 폭장 능력의 미비 등을 핑계로 F-14 의 도입을 포기하고 F-4S 를 더 운용하기로 하며 그러먼사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이륙 준비중인 미 해군의 F-14A+ (F-14B)

 


이런 일들로 인해 그러먼사는 미 해군의 발주 물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 해군에 F-14 를 모두 납입하기도 전에 경영 악화로 파산할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이때 그러먼을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게 이란이었습니다.

이란은 수시로 영공을 침범하는 소련기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습니다.
특히 MiG-25 같은 경우 이란 공군의 F-4, F-5들은 스크램블해도 어프로치마저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란은 미국 정부에 신형 전투기를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닉슨 대통령은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아 1972년 이란에 대한 F15 와 F-14 의 판매를 승인합니다.

이란 공군은 F-14 와 F-15 를 비교 평가해 F-14 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계약합니다.
1974년 1월 30기의 F-14A 관련 계약이 맺어지고, 같은 해 6월 50기가 추가 발주돼, 총 80기의 F-14A 와 714발의 AIM-54A 피닉스 미사일 판매에 대한 계약이 성사됩니다.
※ 1970년대 초부터 프랑스와 접촉해 이라크 공군이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 미라지-F1도 이란 공군의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이란 정부는 F-14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우선 이란 국영 은행이 그러먼에 7,500만$를 대출해 주게 합니다.
이 대출 덕분에 그러먼은 즉각적인 파산을 면하고, 다른 미국 은행 컨소시엄들의 추가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되어 한숨 돌리고 F-14 생산을 이어가게 됩니다.
(F-14 80기 도입과 관련해 이란 정부가 맺은 거래 규모는 20억$ 입니다)

 

이란 공군의 F-14A 와 Su-24MK 전폭기

 



그 후 추가로 엔진 정비에 대한 지원을 위해 이란 국내에 정비 지원 체제를 구축해주는 비용으로 3억$ 계약이 체결되고, 1974년부터 F-4 파일럿들 중에 선발된 이란 공군의 조종사들과 RIO (후방석의 레이더 요격 장교)들, 정비병들이 미국에 파견돼 미국 본토에서 미해군 교관들에게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란에도 휴즈사 등에서 미국인 기술자 1,000여명이 파견돼 F-14 관련 기술 지원을 해주고, 이란도 F-14 의 운용을 위해 이스파한에 거대한 규모로 하타미 공군 기지를 건설합니다. 1977년 1월 F-14A 초도기가 이란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하고, 같은 해 이란 공군의 F-14A 가 소련 공군의 MiG-25R 정찰기 요격에 성공해 이후로 소련은 이란쪽으로 MiG-25 를 보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하야한 후 국외 도피하고, 호메이니의 혁명 정부 (세계 유일의 신정 일치 정권)이 들어서자 상황은 일변합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란과의 원한 관계를 시작합니다.

이란 혁명으로 미국과 척을 지기까지 이란 공군에 인도된 F-14A 는 79기 (블록 90 30기, 블록 95 49기),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AIM-54 는 훈련탄 10발을 포함해 284발이었습니다.

이 당시 F-14 전환 훈련을 마친 파일럿 (후방석의 RIO 포함)은 120명, 전환 훈련 중이던 파일럿이 100명 이었습니다. 샤 왕조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이란 공군을 혁명 정부는 철저히 탄압했고, 많은 수가 체포돼 고문 당한뒤 사형당하거나, 수감되거나 감금되었습니다.

특히 "샤의 아이들"로 불리던 F-14 부대원들에 대한 숙청이 가장 심했습니다.
※ 1979년 한해동안 F-14 파일럿 27명과 교관 2명, 훈련중이던 조종사 15명이 이란을 탈출해 망명했습니다.

 

 



1980년 9월, 이라크군의 이란 공군 기지 6곳에 대한 공습을 시작으로 이란 - 이라크 전쟁이 시작됩니다.

신생 이란 정부는 종교를 앞세워 결사 항전을 외치지만, 군 핵심 인력들을 숙청당한 이란군과 고립된 이란 정부에게는 전쟁의 국면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떤 문호가 말했던 것처럼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 벌어집니다.

이란 정부는 수감되거나 감금에 처해 있던 F-14 파일럿들과 정비병들에게,
신과 페르시아 민족과 조국을 위해 의무를 다해줄 것을 부탁(...)하고 협박합니다.

많은 수의 이란 공군 부대원들이 부대에 복귀해 F-14 의 가동률을 높이고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애씁니다,
이 시기 이란 공군의 F-14 잔존기는 77기로 대부분 레이더가 가동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피일럿들과 정비병들도 너무 오랫동안 훈련을 하지 못 했고,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개전 초기 F-14 들은 이라크 공군기를 요격할 때 지상 관제에 크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란 공군의 F-14A

 


개전하고 며칠이 지난 후부터 10여기의 F-14 들이 가동 상태에 들어가 공중 초계 임무 (CAP) 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월 7일 이란 공군의 F-14 는 이라크 육군 항공대의 Mi-24 헬기를 기관포로 격추시켜 첫번째 격추 스코어를 올리게 됩니다. 특히 9월 22일부터 두달여간 공중전이 격렬하게 벌어집니다.

이때 공중 전투 초계를 맡은 이란 공군의 F-14 들은 정비 미비에도 불구하고 기체의 성능을 살려 제공권을 장악해 나가게 됩니다. 특히 1980년 10월과 11월에는 AIM-54A 미사일을 편대 비행중이던 MiG-23 기에게 발사해 미사일 한발에 이라크 공군기 여러기가 같이 격추당하는 일도 3번이나 일어났습니다.
※ 이라크 공군은 이란 공군 F-14 의 AN/AWG-9 레이더 전파가 감지되면 임무를 포기하고 공역을 이탈하라는 훈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란 공군의 F-14 는 혹사당했고, 거기에 더해 장비품과 소모성 부품의 부족, 정비 미비에 따라 기체들과 정밀 장비 (공대공 미사일 포함) 들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F-14 파일럿과 정비병들은 전쟁에 참전하고 나서도 반정부 왕당파 인물로 찍혀 늘 협박과 감시를 받으며 임무 비행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다 이란 - 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의 패전을 우려한 이스라엘이 이란에 정비 부품과, 탄약 등을 포함한 무기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나중에 알려진 미국 정부와 이란 정부의 뒷거래로 이란 공군의 F-14 와 공대공 미사일들의 가동율이 올라가게 됩니다.

1985년 25기의 F-14 가 가동 상태였고, 가장 좋을 때는 동시에 비행 가능한 기체가 48기에 이를 때도 있었습니다.

이라크 공군은 공세적인 항공 작전을 기피하게 되고, 이란 공군은 F-14 의 이라크 영공으로의 비행을 금지했기에 양쪽 모두 지루한 소모전을 벌이게 됩니다.

 

 



F-14 라고 하면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활용한 BVR 전투가 연상되지만, 이란 공군의 F-14 사정을 보면, 레이더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미사일과의 연동이 되지 않거나 해서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고 근접 공중전에 들어간 사례들이 많은 편입니다.

F-14A 는 F-111 용으로 제작되었던 플랫 & 휘트니의 TF-30 엔진을 장비하고 있는데, 이 엔진은 F-14 기체와 적합성이 나뻐, 고받음각 비행시나 애프터버너 가동시 스로틀을 조작하면 프레임 아웃이 발생합니다.
(쉽게 말해 엔진이 꺼집니다, 간혹 더 악화돼 플랫 스핀에 빠져 속절 없이 추락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기 흡입구 부분에서 기류의 난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서징이 일어납니다.
(서징은 엔진의 압축기 실속을 일으켜, 엔진 출력을 급격하게 저하시킵니다)
※ 미 해군은 F-14 의 엔진을 제너럴 일렉트릭제 F110 으로 바꾸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런 엔진을 탑재한 F-14A 로 이라크 군용기들과 위험부담이 큰 근접 공중전까지 벌인 이란 공군이지만 대접은 여전했습니다.

격추 보고를 인정하지 않거나, 누락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전공을 인정하지 않았고, 훈장이나 표창 같은 것은 일체 없었습니다. "살려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라"는 말을 곧잘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가령 1986년 10월에는 이란 공군의 F-14 들이 5기의 이라크 공군기를 격추해 보고를 올리지만, 이달 이란 공군의 F-4E 와 F-14A 가 이라크로 도망가 파일럿들이 이라크군에 항복하는 바람에 이달의 모든 격추 기록은 없는 것으로 하고 용서 받기도 합니다,

이란 - 이라크 전쟁 종전 후 이란 정부가 공식 발표한 이란 공군 F-14 의 전과는 30기입니다.

이란이 잃은 F-14는 16기로 사고 손실 7기, 전투와 기타 사유 9기 입니다.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공군의 F-14 파일럿들

 



반면 전후 이란 공군 관련자들이 진술한 자료들과 기록을 보면 이란 공군 F-14A 비행대대들의 전과는 확인 격추 130기, 미확인 격추 29기 였습니다.
※ 격추 수 중에는 대함 미사일인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 요격 2회와, 중국제 C-601 (실크윔) 대함 미사일을 AIM-54 로 격추시킨 기록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란은 80기 도입 완료 후에 추가로 70기를 도입할 예정이었습니다.

레이저 유도 폭탄을 운용하는 개수를 해서 말이죠, 미 해군이 붐캣을 구상한 것보다 20년 정도 앞선 생각 이었습니다.

한때 호크 지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이란 공군의 F-14 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시험 단계였고 부적격 판정을 받아 인티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는 R-27과 R-73 등의 러시아제 공대공 미사일들이 인티되었고, AIM-54 도 오버홀해서 성능 개량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란은 현재 F-14 를 자국에서 유지 보수를 할 능력을 완비해 2030년까지 60기 이상의 F-14 를 가동할 방침입니다.

시종일관 냉대 당하며 "조국 수호 전쟁"에 참여했던 이란 공군 F-14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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