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제트 이야기
도르니에 알파제트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 중반 지상 공격 능력을 갖춘 "고등 훈련기"를 개발하려던 영국과 가볍고 운용이 편리한 "경 공격기"를 개발하려던 프랑스는 폭장 능력을 갖춘 초음속 경 공격기 겸 고등 훈련기를 합작해 같이 만들기로 합니다.
1966년 공동 개발기의 제작사로 선정된 영국 BAC 사와 (현 BAE 시스템) 프랑스의 브레게사는 합작 회사인 SEPECAT ("전투 훈련과 전술 지원 유럽 공동 개발" 의 불어 이니셜을 딴 이름) 사를 설립해 개발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탄생한 전투 폭격기가 재규어로 프랑스와 영국은 단좌형 전폭기와 복좌형 고등 훈련기 사양의 기체들을 도입하게 됩니다.
당대 중형 전투기 사이즈에 소형 전투기 무게를 지닌 이 덩치 큰 쌍발 엔진 비행기를 보며 영국 공군과 프랑스 공군은 무언가 잘 못 됐다는 점을 통감합니다. 재규어는 훈련기로 써먹기에는 너무 고성능에 비싸고, 그냥 운용 하자니 경제성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좀 저렴하게 운영할 수 있는 훈련기를 만들기 위해 1968년 프랑스는 서독에 훈련기 공동 개발을 제의하게 됩니다.
※ 재규어 시제기의 초도 비행이 1968년이고 부대배치가 1969년 이었습니다.
※※ 영국도 재규어로 훈련기 숫자를 모두 충당하려 했지만 답이 없어 독자 개발에 나서 만들게 된 것이 BAe 호크 훈련기 입니다.
프랑스의 제안을 받은 서독은 당시 NATO 의 최일선이어서 경 공격기 버전도 같이 만드는 조건으로 두 나라는 훈련기 공동 조달에 합의 합니다.
단발 엔진인 F-104G 전투기의 사고 손실 숫자에 학을 떼고 있던 서독측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엔진 두개"를 장비한 최대 이륙 중량 4.5 톤인 소형 전폭기에 대한 소요 발주가 1970년 제기됩니다.
여기에 MBB (메셔슈미트, Messerschmitt-Bölkow-Blohm) / SNIAS (에어로 스파시알) 컨소시엄, 다쏘 / 브레게 / 도르니에 컨소시엄, VWF (포케불브사) / 포커 컨소시엄 등이 응찰했고, 다쏘 / 도르니에 안이 채택되어 1978년부터 양산된 것이 알파제트입니다.
※ 입찰 도중 브레게사가 다쏘사에 합병 당했습니다.
서독의 경 공격기형은 알파제트 A 로 불리며 (Appui Tactique, 전술 지원) HUD 와 ECM (전자전 대항 장치) 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서독 공군은 전술 지상 타격 임무를 담당하던 부대들이 운용하던 단좌 공격기인 피아트 G.91 을 대체해 알파제트 A 175기를 도입해 배치합니다.
※ 서독 공군은 소련, 바르샤바 조약국과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F-104G 와 피아트 G.91 전폭기가 지상 근접 지원 (CAS) 을 나눠 맡았고, F-104G 는 전황에 따라 전술 핵 공격을 담당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경공격 / 고등 훈련기 사양은 알파제트 E 로 (Ecole) 불리며 1985년까지 176기가 생산되어 배치됩니다.
1974년 벨기에 공군이 발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알파제트 1A) 경공격/훈련기 사양의 알파 제트 E 는 모로코, 토고, 나이지리아, 코트 디부아르, 카타르 공군이 도입했고, 독일의 조금 더 본격적인 공격기 버전인 알파제트 A 는 포르투갈 공군이 50 기를 도입해 운용했습니다.
이집트 공군과 카메룬 공군은 공대공 미사일 운용 능력과 엔진과 에비오닉스를 개량한 글래스 콕핏이 적용된 알파제트 MS 2를 전폭기로 운용합니다.
1990년대초 구소련 붕괴에 따라 NATO 가맹국 16개국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14개국 간에 체결, 발효된 CSCE (유럽 재래식 무기 조약) 에 따라 독일 공군은 1993년까지 모든 알파제트 A 를 퇴역 시킵니다 (165기)
※ CSCE 는 대규모 군축 조약으로 각 무기 유형별로 보유할 수 있는 수량이 제한되어 있고, 상호 검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탱크도 아니고 장갑차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의 BMP-T 전투차량이나, 구경 100 mm 가 안 되니 절대로 대포가 아니라는 폴란드의 98 mm 박격포 같은 혼종 무기들이 유럽에 다수 탄생하게 됩니다,
태국은 독일 공군에서 퇴역 시킨 저렴한 중고 알파제트 A 50기를 구입하려 했지만, 미국이 끼어드는 바람에 도입 기수를 20 기로 줄여 도입해 2000년부터 경공격기로 운용 중입니다.
※ 이 과정에서 태국은 미국의 중고 F-16 을 강매 당하게 됩니다. 태국 공군의 알파제트 A 는 2000년대 중반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운용 능력을 부여하는 등의 개수가 실시되었습니다.
알파제트는 일견 유럽의 무기 공동 개발 사업 치고는 성공한 케이스로 보이지만, 수출 시장에서 아주 비슷한 성격의 단발기인 BAe 호크에 엔진이 두개라는 원죄때문에 매번 져버리는 바람에 508기로 양산이 종료됐습니다.
※ 유럽의 대표적인 무기 공동 개발 사례로는 재규어, 토네이도, 유로 파이터 타이푼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파제트는 엑조세 대함 미사일까지 운용하는 저렴하고 운용이 편리한 기체여서 여러 나라에서 현역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대량으로 나온 중고기들은 캐나다와 미국, 영국의 방산 관련 회사들에 팔려 가상 적기 (어그렛서) 로 운용되거나 구글, 레드불 (8기를 구입해 곡예 비행단을 운용 중) 등 민간 기업들도 구입해 운용하고 있습니다.
※ 벨기에가 운용하던 알파제트 25기는 작년 7월에 캐나다의 어그렛서 서비스 회사에 일괄 판매 되었습니다.
알파제트의 자매기 격인 팜파 라는 비행기도 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의 FMA사 (현재는 국영화된 아르헨티나 항공기 제작사) 는 노후화된 모랑 솔루니에사의 훈련기를 대체할 신형 훈련기 개발에 착수해 단발 엔진의 고익기 예비 설계안을 만들게 됩니다.
FMA사는 독일 도르니에사와 공동 개발 계약도 체결합니다,
도르니에사 주도로 개발된 기체는 사실상 알파제트 를 소형화한 직선익기로 만들어 집니다. 훈련기 겸 경 공격기로 써먹다는 컨셉도 공유돼 알파제트 보다 간략화된 지상 공격 임무용 에비오닉스가 장비되어 1984년 시제기의 비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경공격기를 겸한 고등 훈련기는 IA-63 팜파로 명명되어 1988년 초도기가 아르헨티나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해 1990년까지 18기가 납품됩니다.
1990년대에는 미국 LVT 와 협력해 팜파를 소폭 개수해 팜파 2000 이라는 이름으로 미 공군 / 미 해군 합동 훈련기 조달 사업 (JTAPS) 에 후보로 선정되었지만 텍산 II 에 밀려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 LVT (Ling - Temco - Vought, 보우트) 는 미국의 대형 방산 그룹으로, 1970년대 중반 사모 사기건에 휘말려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하다 2000년에 파산 신청을 해 청산된 기업 집단입니다. F-4U 콜세어 전투기, A-7 코르세어 II 공격기나 모 만화에서 날개 접고 날기도 하는 F-8 크루세이더 전투기를 만들었던 회사입니다. 그룹 파산 후 항공기 제조 부문은 사모 펀드 등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트라이엄프 그룹 산하입니다.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 FMA 사를 운영하던 시기에는 새로운 엔진을 장비하고 아르헨티나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A-4AR 과 호환되는 에비오닉스와 무장 시스템을 탑재한 개량형인 AT-63 팜파 II 도 6기가 생산됩니다.
기존에 운용 중이던 구형 IA-63 팜파 12기도 팜파 II 에 준하는 개량을 받아 1976년부터 사용해 오던 IA-58 푸카라 공격기를 대체 했습니다.
팜파 III 는 이스라엘 엘빗사의 에비오닉스와 HMD (Head Mounted Display) 를 포함한 글래스 콕핏이 적용된 공격기로 2013년에 개발을 시작해 40기 규모의 발주를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2016년에 초도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하고, 2018년 2월에야 3기를 발주해 작년에 3기가 아르헨티나 공군에 인도되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기가 배치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팜파 III 는 본격적인 경공격기로 모두 6 항공 여단에 배치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12기 도입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군 6 항공 여단은 과거에 미라지 III, 대거 (이스라엘 IAI 네셔의 아르핸티나 제식명), 핑거 (포클랜드 전쟁 후 생존한 대거 전투기들에 HUD 와 RWR (레이더 경보 장치) 가 장착된 개량형), 미라지 5 (포클랜드 전쟁에서 격추당한 대거의 보충분으로 구입해온 페루의 중고 미라지 5 P) 를 운용했지만, 경제난과 어떤 나라의 집요한 방해로 대체기 없이 2015년 11월 28일 노후화된 여단의 전 기체가 퇴역해 5년간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팜파 III 의 수출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과테말라가 2기를 주문했다 2주일만에 취소하는 등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 포클랜드 전쟁 때 아르헨티나 공군의 주력 전술기들은 A-4B / C 스카이호크 공격기와 미라지 III EA / DA, 대거 (미라지 III 의 자매기) 전투기로 대거와 미라지 III 는 공중 급유 장치가 없어 포클랜드 제도에서 기동 시간에 제약을 받았습니다.
특히 내부 연료 탑재량이 적은 미라지 III 는 연료 여유분이 거의 없어 아르헨티나 본토와 제도간에 왕복 비행만 가능한 수준이라 폭탄 운용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제공권 장악이나 영국군의 눈을 돌리게 하는 미끼 역할을 맡을 기종이 대거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대거 편대들은 폭장 운용 외에도 A-4 와 미라지 등 다른 공격 임무 기체들을 위해 영국군 해리어기들을 붙잡아 두는 임무를 전담해 피해가 더 컸습니다.
※※ 당시 누가봐도 답이 없는 이 절망적인 임무에 내몰렸던 대거 운용 부대가 6 항공 여단이었고, 보유기수의 절반 정도를 상실했습니다.
(엑조세 대함 미사일은 해군 항공대가 보유했었고, 그나마 개전으로 인도가 중단 돼 5발로 전쟁을 치뤘습니다)
심각한 전술 작전기 부족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 공군은 한국에서 FA-50 을 도입해 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도입이 좌절되자 궁여지책으로 A-4AR 에 개수 작업을 해 더 긴 시간 운용 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을 A-4AR 과 팜파 III 만으로 버텨내야 합니다.